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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 - 자연의 본질에 대한 질문 : 임동락의 조각세계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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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3-12-29 11:18 조회 1,347hit 댓글 0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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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본질에 대한 질문 : 임동락의 조각세계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미술평론가)            
Yoon, Jin Sup(vice president o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Critics)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내외에서 갖는 임동락의 작가적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그 계기가 된 것은 2006년의 라 데팡스 전시였다.
라 데팡스는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도시인 파리를 세계적인 명소로 인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는바, 때 마침 이곳 광장에서 벌어진 임동락의 조각 개인전은 대중은 물론 세계 미술계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20066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라 데팡스 광장과 신 개선문인 그랑드 아쉬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는 현지 언론과 비평계의 호평을 받았으며, 임동락은 그 여파로 전시작 중 하나인 <Point-성장>이 라 데팡스 광장에 영구 전시되는 성과를 얻었다. 그는 이 전시를 계기로 세자르를 비롯하여 알렉산더 칼더, 호앙 미로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에 이어 45번째로 소장품 목록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성공에 힘입어 임동락은 유럽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더욱 주력하게 된다. 그 뚜렷한 성과는 이듬해에 열린 독일 바덴바덴 시의 레오폴드 광장 야외조각 초대전이었다. 20074월에서 9월까지 5개월 간 열린 이 전시는 바덴바덴 시장의 초대로 이루어졌다.
 바덴바덴 시의 초대에 이어 2012년에 열린 베니스의 [Open 15:국제 야외조각설치미술제(International Exhibition of Sculpture and Installation)]전에 초대된 임동락의 야외조각 특별전은 그의 존재를 유럽 미술계에 다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태리 대통령의 후원으로 치뤄지는 이 국제야외조각설치미술제는 그 역사에 걸 맞는 명성을 지니고 있는바, 이를 계기로 임동락의 조각이 베니스영화제 특별상 수상자를 위한 트로피로 선택되는 영예를 입기도 했다.
 
 이 일련의 초대전에 이어 다시 유럽의 중심부인 독일에서 이루어진 임동락의 이번 레온베르크 미술관 전시는 독일 미술계에 다시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어느 한 작가가 한 문화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단발적인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되며, 보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임동락의 이번 독일 전시는 독일을 비롯한 프랑스, 나아가서는 유럽 전역에의 본격적인 진출을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조각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임동락은 한국의 자연에서 형성된 자연관에 모더니즘 조각에 토대를 둔 현대의 조형어법을 가미하여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일궈왔다. 그의 작품은 크게 볼 때 음과 양으로 대변되는 동양 고유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의 주역은 바로 이러한 음양사상을 기초로 한 것이거니와, 동양에서는 자연의 운행법칙과 인간적 삶의 행로가 다 같이 이 원리에 의해 풀이되고 있다이는 마치 복잡해 보이기만 하는 자연의 운행과 인생의 양상이 모두 단순한 원리의 변수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수많은 변형을 보이는 작품 또한 그 원리 면에서 보면 지극히 단순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임동락 역시 30년이란 오랜 창작의 역사를 통해 이 원리를 자기 조형의 기본틀로 삼아왔다.
 
 그 원리에 현대성의 옷을 입히는 일은 임동락이 창작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그는 한국에서 컴퓨터를 가장 빨리 창작에 적용시킨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의 대다수 작가들이 아날로그적 사고에 젖어 작품의 스케치를 하던 80년대 후반에 누구보다 앞서 디지털의 세계가 지닌 속도와 과학적 객관성에 눈을 떴다.
 컴퓨터상에서 이루어지는 그의 작품 렌더링은 특히 작품의 정합성은 물론 구조적 완전성 면에서 거의 완벽하게 수행된다. 임동락의 미니멀한 성격의 기하학적 조각은 이처럼 음양의 원리에 입각한 자연관에 조형적 현대성의 옷을 입힌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현대 도시의 경관에 어울리는 미적 특질이 내면화 돼 있다.
  최근 그의 사고는 건축과 조각의 융합, 즉 다시 말해서 조각의 확장으로서의 건축에 개념적 접근을 꾀하고 있는데, 이는 조각의 도시에 관한 생태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찍부터 환경조형에 몰두하면서 환경에 관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창작 활동의 초기부터 그는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양괴와 양괴 사이에 배태되는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 왔는데, 관계의 미학은 이후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원리가 되어왔다. 그 요체가 바로 음양의 조화인 바, 이는 이원론을 통해 대립적 관계로 파악한 서구의 철학적 전통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 서구의 이원론이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전개되는 대립, 지양의 변증법적 발전을 지향해 왔다면 동양은 반대로 음양의 조화, 상생을 꾀해왔다. 오늘날 임동락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현대성의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이 동양적 원리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상생의 개념은 임동락의 작품에서 흔히 포용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의 기하학적 조각 작품에서 발견되는 신체성의 개념은 포용의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은유이다. 자연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품에 끌어안는 수용성은 곧 대지와의 합일성에 다름 아니다. 거울처럼 광택이 나게 매끄럽게 처리된 스텐레스 스틸의 표면에 비친 주변 환경과 관객의 이미지는 임동락의 조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빛은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을 형성하는 근원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다.
 그는 나의 조각은 빛과 공간의 유기체이다.”라고 말한다. 빛이 있음으로써 그의 작품은 대지 위에서 찬란하게 빛난다. 그의 야외 조각 작품에서 주변의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작품의 구상단계에서 주변 환경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오랜 환경조각의 창작 경험을 토대로 그는 환경조각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장소성, 접근성, 오락성, 안정성, 항구성, 경제성을 들고 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도시의 생태와 인간적 삶에 토대를 두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발표된 그의 작품이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야외에서 전개된 사실은 이러한 그의 조형 철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무엇보다 스케일이 큰 그의 대형 작품들은 필연적으로 전시장 보다는 인간이 사는 도심의 공원과 거리를 주 무대로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 때 도시 생태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사항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주변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야외 조각품의 문제는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일차적인 문제를 떠나 삶의 연장으로서의 건축물에 어울리는 작품을 낳아야한다는 당위적 사고를 불러일으켰다. 임동락이 최근 들어 부쩍 조각의 연장으로서의 건축, 즉 조각과 건축의 융합을 착안하게 된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 임동락의 기하학적 추상조각은 빛의 기하학’(이것은 곧 이번 독일 전시의 타이틀이기도 하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빛의 요소가 강하다. 물론 모든 조형예술이 빛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는 다른 요소보다 유독 빛을 강조한다. 이 빛에의 탐닉이 작품의 표면을 광택이 나는 것으로 만드는 계기를 부여했다. 그는 캔디 도장이라는 특수 코팅을 빛을 가장 효과적으로 생성시키는 주요 기법으로 선택했는데, 이는 비단 그뿐만 아니라 제프 쿤즈나 아니쉬 카푸어 같은 작가들도 취하고 있는, 현대 조각에서는 특화된 코팅 기법이다. 그는 주변의 상황을 가장 효과적으로 작품의 표면에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관건이 되는 금속의 표면 처리에 신경을 쓴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작품의 표면은 주변의 경관은 물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라이노크로스(Rheinoceros)라는 3D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컴퓨터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프로세스는 그의 작품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테크놀로지의 산물임을 말해준다. 그는 컴퓨터에서 렌더링된 이미지를 3D 프린터를 이용, 모형을 출력하여 새롭게 수정, 보완하는 복잡한 과정을 진행한다. 이때 작품의 형태뿐만이 아니라 구조적 내지는 역학적 문제들이 함께 검토되며, 이는 다시 작품이 현장에 설치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제반 문제점들에 대한 검토로 연결된다.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의 기계를 사용해서 완벽하게 완성된 임동락의 조각은 그의 객관적인 사유만큼이나 도시 경관에 어울리는 최적의 조각 환경을 구현한다. , 작품이 주어진 환경적 조건에 부적합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환경적 조건을 작품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환경을 작품의 존립을 위한 절대 조건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빛에 반짝거리는 스텐레스 스틸의 표면은 관객의 모습은 물론, 주변의 건물이나 나무, 숲 등 자연물의 형태를 담아내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이때 관객들은 거울과도 같은 작품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리거나 다양한 동작을 취하며 노는 상호작용적(interactive)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이처럼 임동락의 환경조각은 친환경적이며 인간적이고 자연과 인간, 도시 간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가 된다.
  
 ​ 임동락은 최근 프랙탈 이론에 기반을 둔 작품의 제작에 몰두해 있다. 최근 컴퓨터 그래픽분야에서는 이 이론을 받아들여 실물에 근사한 도형을 그리게 되었는데, 이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순환성(recursiveness)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론이다. , 자기 유사성은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순환성은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전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임동락의 <Point-protoplasm> 시리즈는 바로 이 프랙탈 이론에 입각하여 만든 작품이다. 수직구조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작품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높이와 두께가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는, 즉 증식이 가능한 작품이다. 원기둥의 변형체인 하나의 단위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수직으로 얼마 던지 확장이 가능하며 높이에 따라 거기에 합당한 모듈로 두께를 조절하게 된다.
 이 과학적 정합성은 그의 작품이 직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과 동시에 과학과 수학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프랙탈 이론이 자연의 법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과 휴먼 스케일에 기반을 둔 현대 건축의 도시 환경(기하학적 건축물들로 이루어진)에 그의 작품이 부합하는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메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임동락의 기하학적 작품들은 우주의 순환구조에 대한 아날로지이다. 음과 양의 구조를 지닌 이 작품들은 완만한 곡선을 지닌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주변의 경관을 왜곡시킨다. 거울과도 같은 이 표면 위에서 주변의 건물이나 나무, , 관객의 모습은 변형된 형태로 반영된다. 어떤 건물은 가로로 길게 늘여져 보이는가 하면 때로 관객의 모습은 세로로 길게 변형된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처럼 변형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관객의 각별한 재미일 것이다. 앞서 임동락이 언급한 환경조각의 요소 가운데 놀이, 즉 오락성을 강조한 대목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한때 임동락은 고유의 추상작품에 잎이 달린 나무를 결합하거나 인체를 연상시키는 구상적 요소를 첨가하는 등 절대추상의 태도를 유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점차 자신의 작품에서 구상적 요소를 털어내면서 완벽한 기하학적 추상의 형태에 몰입하고 있다. 이는 자연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작가의 의지로 읽혀진다. 자연의 기본구조에 대한 조형적 천착을 통해 조각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지속하고 있는 임동락의 작품세계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관객들에게 광범위하게 소개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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