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C. 모건 - 빛의 기하학, 베니스를 품다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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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3-12-26 17:58 조회 1,066hit 댓글 0comment본문
임동락의 “빛의 기하학”
-Lim Dong –Lak’s Geometry of Light-
로버트 C. 모건
임동락의 작품은 대부분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전시 공간에 설치될 때 그의 작품은 빛과 작용하여 주변 환경을 수용하며, 시간과 공간을 점유한다. 이번에 그가 베니스의 리도섬에서 1996~2009년에 제작한 9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작들은 대부분 베니스의 해안 교두보에서 섬 안을 연결하는 도로의 산책길에 설치되었고, <Point-Human+Space>(2000)와 같이 보트, 곤돌라, 소형 증기선, 수상택시가 드나드는 선착장에도 설치됐다. 나는 선착장에 설치된<Point-Human+Space>를 이미 한국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작품은 원래 2000년 제3회 광주 비엔날레의 의뢰로 제작된 것으로, 당시 주제와 관련된 기념비적인 모습으로 전시장으로 향하는 야외 광장에 서 있었다. 그렇게 나는 12년 전 임동락의 작품과 처음 만났던 것이다.
원반과 타원에 맺힌 빛
임동락의 작품은 하나만 따로 볼 때와 앙상블로 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 관람자는 리도섬 곳곳을 산책하면서 다양한 작품 사이를 거닐게 된다. 임동락의 조각은 빛, 그리고 작품이 설치된 장소와 주변의 여운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아트와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모듈 형태에 기초하여 변형과 순열을 구사하는 방식에는 그만의 독창성이 있다. 임동락은 큐빅 형태로 작업하는 미국 조각가 도날드 저드와는 대조적으로 원반형과 타원형을 선호한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빛과의 관계를 평면적으로 여과 없이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원반과 타원 형태 이외에도 <Point-Fly>(1999), <Point-Gate of Space>(2000), <Point-Fly II>(2005)와 같이 쌍곡선(hyperbolic) 형태를 지닌 작업도 있다. 이 작품들이 보여 주는 3차원적인 형태는 관람객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킨다. 2000년에 완성된 작품<Point-Protoplasm I><Point-Protoplasm II><Human+Space>는 지지대 없이 세워져 있다. 이 작품들은 모듈을 쌓은 것처럼 수직적으로 구조화된 상태로 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다.
임동락의 작품에는 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이 내포되어 있다. 나는 한국 예술가인 그가 자연스럽게 이러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주의 미술은 흔히 대칭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리도섬의 잔디 산책길에 설치된 <Point-Mass>(1996)등 그의 초기 작품들을 상기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 출품 된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더 의인화된 조각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서로 맞붙어 있는 두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구형이 두 개의 반원형 기둥 형태의 사다리꼴 형태에 의해 받쳐져 있다. 여러 단층으로 이루어진 좌대 위에 서 있는 사다리꼴 기둥 형태는 서로 깊이 맞물린 이 두 개의 구형을 받치고 있고, 그 틈새로 작은 구형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신화에 등장하는 아틀라스(Atlas)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이러한 의인화된 형상을 순식간에 일종의 추상 건축적인 성격으로 변신한다. 서로 맞물리고 있는 형상은 중력에 따른 힘의 재현을 시사하는데, 이는 구조물을 지탱하고 있는 사다리꼴의 경계에 의해 압박되고 있는 듯한 구(球) 형태들 사이에서 일종의 집합점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비범한 외관에 의해<Point-Mass>는 그저 단 한번 얼핏 바라보는 것 그 이상을 요구하는 조각이다. 달리 말하면, 이 작업은 원시적이기보다는 세련된 신비로움 혹은 신비한 원천, 그리고 아카데믹하기보다는 도발적인 고대의 발굴 혹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에 대한 철학적인 해석을 드러내는 사고의 체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각각의 특징들은 상대적인 위치 짓기에 의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응집된다.
빛을 흡수하는 조각
작품<Point-Mass>가 제작되고 나서 13년 후 선보인 <Point-Mass IV>(2009)는 금속표면을 작열하는 빨간 빛으로 산화 처리한 조각으로, 그 전작과 명백하게 비교 설명하기 힘든 작품이다. 그런데 시각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 두 조각 작품에는 몇 가지 구조적 유사성의 리듬(cadence)이 존재한다. 조각의 경우, 작품의 형식적 구조는 시각적인 외형을 교묘히 벗어날 수도 있다.
이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Point-Mass IV>에는 복합적인 단계처럼 여겨지던 두 개의 기울어진 사다리꼴 형태 같은 어떤 토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에 대한 근거나 이유는 없다. 내부 압력에 의해 팽창된 것처럼 보이는 이 원형의 구는 곧바로 지반 위에 안착한다. 이 작품의 기하학적 구조는 전체적으로 정의내리기 어렵고, 또한 그 내포된 의미를 해독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작가가 2000년대부터 판 모양의 원반 형태와 타원 형태를 마치 토템적으로 쌓아 올렸듯이, 원형이 타원형이 되고 타원형이 원형이 되는 듯 시각적으로 앞과 뒤를 엮어 내고 있다. 즉 <Point-Mass IV>는 구와 타원 형태의 난형(卵形), 이 두 가지를 단일한 전체론적인 형식 속으로 융합하는 것 같다.
이 단순한 외관은 또 다시 우리를 현혹시킨다. 우리가 이 작품을 일견 바라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마치 알과 같은 그의 구형태는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전의 <Point-Mass>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조화미로는 더 이상 <Point-Mass IV>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확실한 의미에서 중력점은 더 오랫동안 재현된다. 오히려 <Point-Mass IV>는 시각적 부유의 재현보다는 덜 이슈화되는 중력 방향에 의한 힘의 표현과 그것이 땅에 안착하려는 바로 그 순간과 같이 새로운 미묘함을 드러낸다. 그것의 존재(presence)는 진정 생경하다.
임동락의 형태들은 빛의 방향을 강조하는 강력한 물리적 관계를 보여 준다. 그것이 바로 그가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아무것도 반사되지 않는 표면을 만들기 위해 거울과 같이 빛을 투사하던 두 개의 원반형 표면을 마모시킨 작품 <Point-Two>(2005)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전면과 후면 현상이 존재한다. 이 두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원반 형태를 통하여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이 원반 형태를 지지하기 위해 그 반대편 쪽에 위치한 구조물과는 철저히 다르다. 이 작업은 어느 정도는 균형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렇지 않다. 일종의 균열처럼 정면과 뒷면에서 보이는 것 사이의 극단적인 단절이 존재한다. 이 작품은 임동락의 “빛의 기하학”이 단순히 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둥글고 원형적인 표면이 변화하여 그림자를 사용하거나 혹은 빛을 역으로 적용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효과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관찰하면서 마주치는 일종의 경험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리도섬의 확 트인 해안 풍경과 함께, 임동락이 펼치는 작품의 절묘한 배치는 참으로 놀랄 만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가 정성스럽게 다듬은 스테인리스 스틸 형태들은 그 주변에 존재하는 빛을 모두 흡수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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